회의 시간, 상사의 말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나만 빼고 다들 동의하나?’ 싶어 입을 다물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속으로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지 않나요?
우리는 매일 다른 사람의 생각을 추측하며 살아갑니다.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할 때, 다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먼저 고려하죠. 오늘은 이렇게 우리가 알게 모르게 따르는 이 거대한 힘, ‘공통 지식’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안다’는 것을 ‘서로 아는’ 것
‘공통 지식(Common Knowledge)’은 단순히 ‘많은 사람이 아는 지식’이 아닙니다. 기술적인 의미는 훨씬 깊습니다. ‘내가 안다는 것을 당신도 알고, 당신이 안다는 것을 나도 안다’는 사실이 서로 끝없이 연결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 개념은 ‘벌거벗은 임금님’ 우화로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꼬마가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외치기 전, 모든 사람이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도 이 사실을 아는지’ 확신하지 못했죠.
꼬마의 외침이 바꾼 것은 ‘정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식의 상태’였습니다. 그 외침은 모든 사람이 듣는 ‘공개적인 신호’가 되었습니다. “이제 여기 있는 모두가 이 사실을 안다”는 공통 지식이 탄생한 순간입니다.
아무도 원하지 않지만 멈추지 못하는 일
공통 지식은 때로 우리를 이상한 함정에 빠뜨립니다. 바로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 현상입니다. 실제로는 아무도 동의하지 않지만, ‘나 빼고 모두가 동의할 것’이라고 착각해 침묵하는 상황이죠.
한 대학 기숙사에서 진행된 연구가 좋은 예시입니다. 학생들은 개인적으로는 과도한 음주 문화를 어리석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애들은 모두 이걸 멋지다고 생각하겠지”라고 지레짐작하며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두가 싫어하는 그 문화는 계속 유지되었습니다. 개인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대한 잘못된 ‘공통의 믿음’이 현실을 지배한 것입니다.
주식, 화폐, 그리고 슈퍼볼 광고의 공통점
이 공통 지식의 원리는 우리 경제와 시장을 움직이는 핵심 동력입니다. 우리가 종이 화폐를 가치 있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종이 자체가 가치 있어서가 아닙니다. ‘다른 모든 사람도 이것을 돈으로 인정한다’는 공통 지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식 시장의 거품(버블)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큰 바보 이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이 주식을 사는 이유는, 나중에 ‘더 큰 바보’가 나타나 더 비싼 값에 사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다른 사람들도 이 주식이 오를 거라 생각한다’는 공통 지식에서 나옵니다.
이런 믿음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개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미국 슈퍼볼 광고가 대표적입니다. 천문학적인 광고비가 드는 그 시간에 광고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 회사는 이만큼 건재하고, 모두가 우리를 주목한다”는 강력한 공통 지식을 생성합니다.
1984년 애플 매킨토시 광고가 전설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 광고는 제품의 기능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제 세상이 바뀐다”는 거대한 메시지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선언했습니다. ‘나만 이 신제품을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사람들의 두려움을 공통 지식으로 깨부순 것입니다.
화장지 사재기와 독재 정권이 두려워하는 것
공통 지식은 때로 사회적 공포를 만들고, 때로는 거대한 변화를 이끕니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 화장지 사재기 현상을 기억하시나요?
이는 은행의 ‘뱅크런’ 사태와 원리가 같습니다. 화장지가 정말 부족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사재기할 것”이라는 공포가 “나도 당장 사야 한다”는 행동을 유발했습니다. 모두가 이 공포를 ‘공통으로’ 인지했기에 벌어진 일입니다.
반대로, 독재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바로 이 공통 지식입니다. 국민 개개인이 불만을 갖는 것은 무섭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광장에 모여 “우리 모두가 이 정권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서로 확인’하게 되는 순간, 정권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독재자들이 언론을 통제하고 집회를 금지하는 이유입니다. 심지어 백지(白紙)를 들고 시위하는 것조차 체포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아도, “할 말은 너무 많지만 할 수 없다”는 그 메시지를 모두가 ‘공통으로’ 알게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공통 지식’이라는 보이지 않는 규칙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때로는 효율적인 협력을 돕는 신호등이 되지만, 때로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침묵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지금 내가 따르는 이 생각은 정말 나의 생각일까요? 아니면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는 또 다른 공통 지식은 아닐까요?
내 생각과 우리를 둘러싼 이 ‘공통의 믿음’을 한 번쯤 구별해 보는 것. 그것이 우리가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출처: Harvard Business Review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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