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아마도 ‘위험’, ‘손실’, ‘광기’ 같은 단어들이 떠오를 겁니다. 역사적으로도 닷컴 버블처럼 많은 이들에게 큰 상처를 남긴 사건들이 있었죠.
그래서 우리는 버블을 경계하고, ‘현명한’ 투자자들은 버블이 끼기 전에 빠져나와야 한다고 배웁니다.
하지만 만약, 이 버블이 인류의 발전에 꼭 필요한 과정이라면 어떨까요?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누리는 기술들이, 사실은 과거의 버블이 남긴 ‘유산’ 위에 서 있다면요?
지금 벌어지는 AI 열풍 역시 누군가는 버블이라고 말합니다. 이 거대한 광기가 꺼진 뒤, 우리에게는 무엇이 남게 될까요?
1%의 성공 확률에 도전하는 사람들
최근 ‘서브스트레이트(Substrate)’라는 스타트업이 있습니다. 이들은 반도체 제조 공정 자체를 완전히 뒤바꾸려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단순히 리소그래피 장비를 만드는 ASML을 넘어서는 것이 아닙니다. 공정 전체를 책임지는 파운드리, 즉 TSMC의 영역까지 한 번에 혁신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업계의 두 거인을 동시에 상대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창업자 본인도 이 성공 확률이 1%에 불과할지 모른다고 인정할 정도입니다.
왜 두 거인을 동시에 상대해야 할까?
이들이 이런 무모해 보이는 전략을 택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의 반도체 공정은 ASML의 장비와 TSMC의 생산 방식이 마치 ‘윈도우와 인텔’처럼 뗄 수 없이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비싸고 핵심적인 리소그래피 단계를 완전히 새로운 기술로 대체한다면, 기존의 공정 전체를 새로 설계해야만 합니다.
TSMC 같은 기존 강자들은 현재 방식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이런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할 이유도, 여력도 없습니다.
결국, 새로운 판을 짜려는 도전자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버블’이 불가능한 도전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 이런 1%짜리 도전에 막대한 자금이 몰리는 걸까요? 바로 지금이 ‘AI 버블’의 한가운데이기 때문입니다.
버블은 시장에 광적인 열풍과 막대한 돈을 쏟아붓습니다. 이 돈은 엔비디아로, 다시 TSMC와 ASML로 흘러 들어갑니다.
이렇게 시장의 기대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면, 1%의 성공이 가져다줄 보상의 크기 역시 천문학적으로 커집니다.
평소라면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을 ‘미친’ 아이디어에 기꺼이 돈을 지불할 주체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버블의 유산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버블’을 부정적으로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닷컴 버블 당시의 ‘펫츠닷컴’처럼 말이죠.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이런 버블이 ‘생산적 버블’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19세기의 철도 버블은 투자자들을 파산시켰지만, 대륙을 횡단하는 철로를 남겼습니다.
1990년대 말의 통신 버블은 월드컴 같은 기업을 무너뜨렸지만, 지금 우리가 화상 회의를 하는 데 쓰는 ‘다크 파이버(광케이블)’를 땅속에 깔아주었습니다.
버블은 당대의 광기일지 몰라도, 다음 시대를 위한 필수 인프라를 구축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지금의 AI 버블은 무엇을 남길까?
그렇다면 지금의 AI 버블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게 될까요?
과거의 버블이 철로나 광케이블 같은 ‘인프라’를 남겼다면, 지금의 버블은 ‘동시다발적 혁신’을 강제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미친 듯이 돈을 쓰면서,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어려운 문제에 동시에 매달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의 ‘결정론적’ 칩이 아닌, AI의 ‘확률론적’ 계산에 최적화된 완전히 새로운 ‘열역학 칩’ 같은 아이디어입니다.
이런 기술은 평범한 시기에는 절대 자금을 조달할 수 없습니다. 버블의 광기 속에서만 가능한 시도입니다.
물론 이 모든 시도가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1%의 도전자들은 대부분 실패할 것이고, 버블은 언젠가 꺼질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광기가 끝난 뒤의 ‘잿더미’ 속에 미래가 숨어있다는 사실입니다.
버블이 없었다면 아예 시도조차 되지 못했을, 세상을 바꿀 기술의 씨앗들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예측 불가능하고 혼란스럽지만, 동시에 무척이나 흥미진진한 시대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습니다.
출처: Sharp Tech Podcast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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