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게 일을 시켰는데, 왜 내 피로도는 줄지 않을까?

“설거지는 내가 할게, 걱정 말고 쉬어.”

가족 중 누군가가 이렇게 말해놓고 한참이 지나도록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몸은 소파에 앉아 있지만, 머릿속은 온통 ‘언제 씻으려나?’, ‘내가 가서 다시 말해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가득 찰 겁니다. 결국 몸만 쉬고 있을 뿐, ‘멘탈 로드(Mental Load, 정신적 부하)’는 그대로 짊어지고 있는 셈이죠.

놀랍게도 이것이 바로 우리가 현재 AI 에이전트를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AI에게 코드를 짜달라고 명령하고,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화면을 쳐다보며 기다립니다. AI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지 감시하고, 문맥을 다시 설명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뇌는 쉴 틈이 없습니다. 오늘은 구글 랩스(Google Labs)가 제안하는 ‘능동형 에이전트(Proactive Agent)’ 개념을 통해, AI와 함께 일하면서도 내 시간을 온전히 지키는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인간은 멀티태스킹을 할 수 없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스스로를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존재’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인간은 한 번에 하나씩만 처리할 수 있는 ‘직렬 프로세서(Serial Processor)’에 가깝습니다. 여러 일을 동시에 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사실은 아주 빠르게 주의력을 이리저리 옮기고 있을 뿐입니다.

문제는 이 ‘주의력 전환’에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 사실입니다. 개발자가 하던 업무를 멈추고 AI 에이전트를 관리하기 위해 문맥을 바꾸는 순간, 생산성의 약 40%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하루 8시간 근무 중 무려 반나절을 ‘업무 전환’에만 낭비하는 셈입니다.

결국 AI가 내 일을 대신해 주더라도, 내가 그 과정을 일일이 지시하고 관리해야 한다면 생산성 혁신은 요원합니다. 진정한 효율을 위해서는 AI가 내 명령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눈치껏 움직여야 합니다.

반응형을 넘어 ‘능동형(Proactive)’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AI 툴은 대부분 ‘반응형(Reactive)’이었습니다. 내가 터미널을 열고 명령어를 입력해야만 비로소 움직입니다. 물론 이 방식은 명확하고 효율적이지만, 앞서 말한 ‘관리의 피로’를 해결해주지는 못합니다.

구글의 새로운 AI 프로젝트인 ‘Jules’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능동형 에이전트’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내가 시키지 않아도 백그라운드에서 조용히 돌아가며, 귀찮은 일들을 미리 처리해 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미뤄둔 인증 관련 버그를 수정하거나, 복잡한 설정 파일을 업데이트하는 일을 내가 커피를 마시는 동안 알아서 수행합니다.

이러한 능동형 시스템이 성공하려면 네 가지 핵심 요소가 필요합니다.

첫째, 내 작업의 흐름을 끊임없이 관찰(Observation)해야 하고,
둘째,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무시하는 것을 학습(Personalization)해야 합니다.
셋째,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적절한 타이밍(Timeliness)에 개입해야 하며,
넷째, 내가 사용하는 도구 안에서 매끄럽게(Seamlessness) 작동해야 합니다.

주방 보조에서 파트너로, 에이전트의 3단계 성장

능동형 에이전트는 마치 주방의 요리사처럼 단계적으로 성장합니다. 1단계는 꼼꼼한 ‘수쉐프(Sous Chef)’의 역할입니다. 요리사가 요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칼을 갈아두고 재료를 다듬어 놓듯이, 에이전트는 누락된 테스트 코드를 채워 넣거나 사용하지 않는 디펜던시(의존성)를 정리합니다.

2단계는 주방 전체의 흐름을 읽는 ‘키친 매니저’입니다. 단순히 코드를 고치는 것을 넘어, 프로젝트 전체의 맥락을 이해합니다. 우리가 React를 쓰는지, 어떤 배포 방식을 선호하는지 파악하여 다음에 필요한 작업을 미리 준비합니다.

지금 구글이 집중하고 있는 3단계는 비즈니스 임팩트까지 고려하는 ‘전략적 파트너’입니다. 단순히 코드가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섭니다. “이 코드를 수정하면 사용자 경험(UX)이 개선될까?”, “페이지 로딩 속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와 같은 ‘결과’를 예측하고 제안합니다. 코드 담당 에이전트, 디자인 담당 에이전트, 데이터 분석 에이전트가 서로 협력하여 서비스의 품질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단계입니다.

기획자가 상상하던 ‘알아서 일하는 동료’의 모습

구글의 ‘Jules’에는 기획자나 PM이 반길만한 흥미로운 기능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메모리(Memory)’ 기능입니다. 에이전트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알게 된 중요한 정보나 규칙을 스스로 기억해 둡니다. 매번 “우리 프로젝트는 이런 규칙이 있어”라고 설명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검증(Verification)’ 기능도 인상적입니다. 에이전트가 코드를 수정한 뒤, 스스로 테스트 시나리오를 짜고 스크린샷까지 찍어서 “제대로 고쳐졌는지 확인해 주세요”라고 보고합니다. 개발자가 일일이 실행해 볼 필요 없이, 보고서만 보고 승인 여부를 결정하면 됩니다.

심지어 코드 곳곳에 남겨진 “나중에 할 일(TODO)” 주석을 찾아내어, 개발자가 잊고 있던 과제들을 스스로 처리해 주기도 합니다. 이는 기술 부채를 관리해야 하는 서비스 기획자 입장에서 매우 든든한 지원군이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창의성이라는 ‘진짜’ 업무로 돌아가는 길

발표자인 캐스 코레벡(Kath Korevec)은 핼러윈 데이를 위해 움직이는 거대한 인형을 만들었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그녀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은 인형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게 하는 창의적인 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센서 라이브러리의 버그를 잡고 펌웨어를 고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써버렸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능동형 에이전트를 도입해야 하는 진짜 이유입니다. 디버깅, 환경 설정, 라이브러리 교체 같은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은 AI에게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하면 사용자를 더 즐겁게 할까?”, “어떤 새로운 가치를 만들까?”와 같은 창의적인 고민에 집중해야 합니다.

AI가 설거지를 알아서 끝내 놓는다면, 우리는 그 시간에 가족과 대화를 나누거나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겁니다. 업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AI가 귀찮은 일을 ‘미리’ 처리해 주는 그날, 우리는 비로소 ‘기계 관리자’가 아닌 진정한 ‘서비스 기획자’로서의 삶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AI Engineer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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